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제23회 한국편집상 최우수상

동아일보 박재덕 차장 인터뷰


“잡아야 했다. 기회였다. 가슴이 뛰었다. 일단 제목 후보군을 하나씩 적어갔다. 오전에 나온 뉴스를 너무 솔직한 제목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눈길을 끌 수 있는 제목을 달고자 했다.
‘반도 못 뛰고…’
제목이 정리되는 순간 실타래가 탁 풀렸다. 대선 레이스의 반도 뛰지 못한 유력 후보. 대선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지형을 바꿀만한 인물로 평가받던 반기문 전 총장이 못 뛰는 상황. 두 가지 의미가 절묘하게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차례는 사진. 상반신 앵글의 회견 장면. 얼굴 부분을 확 클로즈업했다. 굳게 다문 입, 감은 눈이 모든 것을 웅변하는 듯 했다. 그렇게 지면이 그려졌다. 반 전 총장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폭풍 같은 하루였으리라. 편집기자에게는 오랜만에 ‘편집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박재덕 차장, 한국편집상 응모신청서 중에서)

박재덕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열정으로 편집을 할까, 그의 편집은 뭐가 다를까. 한국편집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뻔할 것 같은데 뻔해서는 안 되는 숙명을 가진 편집기자를 편집기자가 캐물어야 하는 난제였다. 단둘만 만났다.
다행히 인터뷰는 술술 풀렸다. 술도 없었는데 말이다.


-왜 편집기자가 됐나?
“신문방송학를 전공했다. 고2 때부터 기자를 꿈꿨다. 편집기자를 딱히 꿈꿨던 건 아니다. 그런데 취재 나가라고 했을 때 싫었다. 편집이 재밌었다. 좋았다.”


-동아일보서 시작했나?
“1999년 한국일보서 수습을 시작했다. 작은 컴퓨터 잡지에 10개월 정도 다니기도 했다. 대학 졸업할 때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취직할 곳이 없었다. 동아일보로는 2005년 옮겼다. 경력 공채시험도 거쳤다. 편집 실력도 보고, 면접도 보고…. 옮길 당시 한국일보선 2면 편집했다. 기자조판 막 시작하던 때라 실력보다 빠른 손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동아일보에서 편집은.
“동아일보에서는 줄곧 종합면 하고 야근했다. 지금은 맞교대로 야근한다. 1면은 잠시 빠져나왔다. 동아는 야근 때 판을 많이 뒤집는다. 동아의 스타일인 듯 하다. 강판 5분 전에라도 기사 들고 오면 거부할 수 없다. 취재는 5분이나 남았는데 왜 안 되냐고 얘기하는데 대부분 들어주게 된다. 기사도 읽어야 하고 제목도 뽑아야 하고 팩트 확인도 해야 하고…. 점점 더 이런 경향은 심해질 것 같다. 갈수록 인터넷과 경쟁하다보면. 똑같은 기사라도 차이를 매일 고민한다. 매일 매일 편집의 컨셉트가 다르다. 어느 날은 세밀하고 어느 날은 크게 보자하고. 이게 정통인데 정통보다 옆을 치는 게 갈수록 많다. 정통으로 해야 할 때는 정통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매일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신문은 뉴스가치 판단이 중요한 것 아닌가
“다 아는 뉴스라는 얘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이 다 뉴스를 안다고 출발하니까 신문의 본질인 정보가 소외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독자들이 모든 신문을 다 보는 건 아닌데 함정에 빠진 게 아닌지. 주변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기자들만큼 잘 알지 못하지 않나. 특히 종합지를 여러 개 같이 보는 사람은 드물지 않나. 뭘 보여줘야 할지 편집기자의 시각을 어떻게 반영할지가 늘 고민이다. 쉽게 시키는 대로 할지 싸워야 할지 아직도 쉽지 않다.”


-최우수상 받은 ‘반도 못 뛰고…’는 투쟁의 산물인가?.
“제가 생각하는 정석은 아니었다. 스트레이트로 가면 재미없겠다. 이건 뉴스분석이라는 의미를 담아야 하겠다. 고민을 많이 했다. 선배들과 같이 얘기하다가 나온 이야기 중 하나를 일명 물은 거다. 초판 때까지 제목을 달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은 미리 크로핑 해놓고 편집국장에게 들이 밀었다. 이렇게 하겠다고. 제목은 고민 고민하다 막판에 부장에게 내밀었더니 한번 가보자고 했다. 회의시간에 갑론을박이 많았다. 독자들이 이해하겠나, 재미있지 않나. 격론 끝에 갑시다 하고 결론. 사실 그날 9시 반에 퇴근해야 하는데 끝까지 남았다. 부장이 지켜줄 테니 퇴근하라고 했다. 대안도 준비하긴 했었는데 기억 안 난다.”


-‘반도 못 뛰고’는 다중적인 의미 아닌가
“레이스의 반도 못 뛰고 포기했다는 의미가 첫 번째였다. 이렇게 쉽게 포기하나 라는 의미가 있었고, 반이 못 뛰면 누가 수혜를 얻게 되나 하는 의미가 두 번째였다. 뿌듯했다. 그날은 우연처럼 딱 왔다. 이렇게 눈길을 끄는 제목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짜릿하다. 요즘은 이런 여유들이 없어서 안타깝다”


-제목 먼저 하나, 레이아웃 먼저 하나.
“제목부터 잡아놓고 한다. 제목에 맞춰 사진‧그래픽 준비하는 편이다. 그날도 반기문 표정에 집중했다. 제목과 이미지가 하나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편집의 원칙 같은 것 있나
“제목하고 이미지가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로 보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은 수다스럽지 않아야 한다. 편집을 처음 배울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가지를 치고 나면 알맹이만 남듯이. 요즘은 제목이 너무 길어졌다. 제목의 맛보다 친절하고 쉽고 재밌고 이 논리에 너무 갇힌 듯하다. 너무 힘줘서는 안 된다. 덜어내라. 그게 마음  속의 좋은 제목인 것 같다. 5월에 눈이 온 적이 있다. 그걸 시적으로 표현하려고 고민했다. 선배들 놀래키고 싶었는데, 부장이 보자마자 찍 그었다. 힘 빼라며. 곁에 있던 1면 선배가 5월의 눈이네. 정말 힘이 쫙 빠졌다. 군더더기 없는 제목. 그게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 한다. 강약이 드러나는 것도 중요하다. 5단짜기 체제에서는 4대1을 많이 쓸 수  밖에 없어서 속상하다. 왜 매일 레이아웃이 비슷하냐는 지적을 하기도 하는데 데코레이션에 치중하고 싶지 않다. 편집자가 강약을 통해 가치를 판단해주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그걸 사서 보는 것 아닌가. 신문의 존재 이유가 그것 아닌가. 가치판단이 없으면 신문의 존재 이유가 없다. 독자들은 각 신문들이 가치판단 한 것을 상품으로 사서 보는 것 아닌가. 이걸 봐라하고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것 아닌가.”


-편집 말고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주로 잔다. 가끔 가족들(아내와 두 딸)과 여행하는 것 빼고는 TV 보고 쉬는 게 좋다. 웬만한 드라마는 다 봤다. 책을 많이 못 본다면 드라마‧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상금은 어디에 썼나.
“지금 열심히 쓰고 있다. 집사람은 모른다.”

박재덕 차장은 마지막으로 열정을 얘기했다.
“편집 5년차 때 5년만 더 편집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 있다. 그때부터 10년이 넘었다. 관록만 가지고 되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전체를 컨트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의 흐름에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젊은 편집기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후배에게 밥 먹다가도 뉴스 나오면 고개 돌려보나, 그런 열정 없으면 기자 하지 마라 한 적도 있다.”
“신문에 애정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박재덕의 말은 본인을 향한 되뇌임인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