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란 말이 등장한지는 100년도 더 됐다. 프랑스 연극연출가 안토넹 아르토가 ‘극장을 가짜 현실을 보여주는 창’의 개념으로서 VR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머리에 뒤집어쓰는 헤드셋 형태를 지칭한다. VR은 간단히 말해 ‘현실을 볼 수 없도록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고 컴퓨터로 만들어낸 가짜 현실을 눈에 비추는 것’을 말한다.


차멀미와 다른 VR멀미
VR이 등장했을 때 모두가 꿈꿨던 게임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전투하는 등 환상적이고 신나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했다간 바로 ‘VR멀미’로 구토를 하게 된다.
VR은 몇 가지 면에서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부분들이 있다. 먼저 VR멀미라는 큰 허들이 있다. VR멀미는 감각의 불일치로 인해 일어난다. 차멀미의 경우 내 눈은 내가 차에 타고 있어서 시각적으론 ‘내가 제자리에 있다’라는 정보를 주지만 내 귀는 ‘내가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내 귀가 뇌에 전달하는 정보와 내 눈이 전달하는 정보가 달라 감각의 통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불일치로 인해 구토가 일어난다.
이것은 차멀미의 프로세스다. VR멀미는 정확히 반대로 작용해 일어난다. VR의 시각적 자극은 내가 완벽하게 속을 정도로 ‘내가 이동하고 있다’라는 정보를 준다. 눈이 주는 자극은 ‘이동’이고 귀가 주는 자극은‘제자리’이다. VR 멀미는 우리가 태어나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형태의 멀미다. 멀미 해결법은 단순하다. 두 가지 감각을 일치 시켜주면 된다. 최근에는 위치 추적을 해주는 헤드셋들이 일반화 되고 있다. 내 몸이 이동하는 것과 화면의 자극이 일치하면 크게 멀미를 느끼지 않게 된다.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VR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카메라를 이용해서 찍어내는 방법 이 있고 다른 하나는 게임을 만드는 것과 똑같이 게임엔진을 이용해서 만드는 방법이 있다. 게임엔진은 예전엔 구매 비용이 2억~3억에 달했다. 하지만 몇 년전 유니티라는 회사가 무료로 쓸 수 있게 했다. 언리얼 게임엔진도 최근 무료로 사용이 가능해졌다. 현재 VR 콘텐츠의 99%는 이 두 엔진으로 만든다.


VR콘텐츠에 맞는 문법이 아직 없다
영화 ‘전함 포텐킨’의 오데사의 계단은 영화사에 있어서 유명한 장면이다. 몽타주와 시퀀스 기법 등  현대 영화의 기초를 쌓은 장면으로 평가 받는다.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배치시키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에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100년 가까이 여러 가지 편집 이론들이 발전하면서 영화 문법이 만들어졌다.
편집기자도 글과 사진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콘텐츠가 얼마나 다르게 전달되는지 잘 알 것이다. 영상 역시 편집에 따라 뉘앙스가 180도 다른 게 전달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게 VR 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VR은 카메라가 놓여 진 시점에 주변 공간과 사건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1인칭 시점으로 찍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라는 것은 둘이 대화하는 형태의 동영상을 편집하게 될 때 한쪽 사람을 찍고 다른 사람을 찍고 나를 찍고 해도  전체적인 감상이 흐트러지지 않지만 VR로 찍을 때는 내가 등장인물로서 나라는 걸 알기가 힘들다.
초반에 이걸 테스트 해보기 위해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이 단편영화는 남자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카메라의 시점이 남자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단편 영화를 찍는데 굉장히 오래 걸린 건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었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도대체 VR에서 콘텐츠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시나리오를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게임콘텐츠로 만들어 졌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게임 콘텐츠는 오랜 시간 플레이할 수 있고 이런 시점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충분히 시간이 주어질 수 있지만 영상콘텐츠는 그게 힘들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VR 콘텐츠는 촬영 그 자체만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건 점점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
결국 VR은 내 주변에 있는 공간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경험과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UI나 UX도 4각형 화면에 놓여있는 콘텐츠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배치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쓰레기장이 숲속 오솔길 변신
정언두 작가와 일본 아키타 ‘숲속 오솔길’ 프로젝트를 했었다.  30미터 정도 되는 복도를 걸어가면서 체험하는 VR 콘텐츠다. 복도 안을 바다에서 주어온 쓰레기로 가득채운 다음 그 속을 걸어가면 아름다운 숲속의 오솔길로 보이게 되는 VR 경험을 만들었다. 경험을 만들어내는 게 VR 콘텐츠의 중요한 점이다. 큰 쓰레기는 바위덩이로 보이게 했고 철봉은 나무로 보이게 했다. 천장에 비닐을 메달아 걸어갈 때 얼굴에 스치면 나비가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도록 했다. VR 콘텐츠는 공감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배치하면 전체적인 경험을 더욱더 잘 만들 수 있게 된다.
대형 빌딩크기의 백제 금동대향로
홍익대에 전시된 백제 금동대향로 VR 콘텐츠는 클라우드 VR 기술의 일종인 써클 VR기술을 활용해 만들었다. 3~4명이 같은 공간 안에 동시에 콘텐츠를 즐기더라도 간섭과 동선 충돌이 없게 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실제론  50cm 되는 크기다. VR로만 가능한 경험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대향로를 대형 빌딩 크기로 만들었다. 로봇태권브이의 격납고처럼 지하로 내려가면서 구석구석 보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대항로를 그냥 보는 걸로 만들었을 때는 이런 경험을 전달할 수 없다. 체험자는 3~4미터 이동하지만 감각적으로는 건물 3~4층을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직접경험을 전달하는 미디어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미디어는 모두 4각형의 틀 안에 가두어져 있다. 책 만화책 스크린 이 그렇다. 그러나 VR은 우리 주변에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등장했던 미디어와는 전혀 다르다. VR은 기본적으로 구멍이 많은 기술이다. 초기에는 손도 발도 느낄 수 없었고 고개를 까딱이는 것도 힘들었는데 점점 기술이 발전하면서 해결됐다. 위치 이동도 책상 정도에서 운동장 수준으로 넓혀졌다. VR 기술들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욕구의 부족을 느끼게 된다. 감각의 부족을 끊임없이 느끼게 하기 때문에 기술들이 더 발전될 요인이 많다.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VR이 주는 현실과 진짜 현실을 구별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갈 것이다. 호접몽처럼 구글의 VR 플랫폼이 데이드림인 건 아마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지금 VR기기가 우리들에게 주고 있는 가상현실의 정보량(해상도 등)은 굉장히 낮지만 이 부분은 10년 안에 현실에서 받고 있는 자극의 해상도를 어느 순간 넘어갈 것으로 본다. 그때가 되면 진짜현실에 살 것인지 가상현실에 살 것인지는 단지 선택의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외부의 자극을 손과 발과 몸 등 감각기관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뇌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현실과 가짜현실을 구별할 방법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창작물은 다 가상현실의 한 형태고 그것들은 모두 간접경험을 전달하는 미디어다. 그런데 꿈이라는 미디어는 우리에게 직접경험을 전달하는 매체다. VR은 인류에게 직접경험을 가장 유사하게 전달할 수 있는 미디어다. 이 재미있는 물건을 인류가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 VR이 많은 변화를 일으킬 초입에 와 있다. 앞으로 인간의 형태, 인간의 삶의 형태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VR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덕영 클릭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