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1. 혹시 ‘픽토라인’이라고 들어보신 분?
먼저 해외 사례를 하나를 소개하겠다. 혹시 픽토라인이라고 들어본 사람이 있는지? 멕시코의 신생 미디어이다. 픽토라인은 모든 기사와 데이터들을 일러스트레이션(이하 일러스트)으로 담아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재미난 정보 아니면 오늘의 뉴스를 담아서 일러스트로 표현하고 있는데 사진이 충분히 많을 때도 일러스트만을 고집한다. 예를 들면 노벨 의학상 같은 뉴스를 다룰 때 수상자 사진이 있어도 일러스트로 표현한다. 또 몸에 타투를 새길 때 어느 부위에 통증이 발생하는지 색깔 별로 나눠서 그린 일러스트 작품은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이다. 이 픽토라인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무려 300만명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3개 미디어의 ‘좋아요’를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미디어가 이렇게 많은 좋아요를 받은 이유는 SNS를 통해 유통시켜 젊은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고 받아들이는 생태를 잘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뉴미디어도 일러스트를 잘 활용하고 있지만, 뉴욕타임스(NYT)나 워싱턴포스트 등 올드 미디어에서도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얼마 전에 조선일보 문화면에 NYT가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이동윤씨가 소개됐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미디어에 일러스트를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에디토리얼 일러스트에 대해 그는 “단순히 기사를 요약하는 게 아니라 사회 이슈와 흐름을 판단해 글의 뉘앙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편집기자가 제목 다는 것과 비슷하다. 기사를 요약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후의 사건들 그리고 전반적인 뉘앙스, 사회 분위기를 숙지하고 있어야만 독자들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제목을 뽑을 수 있는 것처럼 일러스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동윤씨는 뉴스나 신문을 많이 읽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를 훈련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2. 뉴스메이커 트럼프와 김정은
이제부터 키워드별로 일러스트를 소개하겠다. 뉴스메이커 트럼프, 김정은 그리고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는 미투 등 최근 조선일보에 게재된 지면을 들여다보겠다.
작년에 10대 뉴스 지면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메인을 장식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김정은의 손엔 강력한 무기 핵이 항상 쥐여져 있다. 이슈메이커 트럼프는 워낙 많이 등장해서 그림스타일을 계속 바꿔야 해서 굉장히 힘들다. 외교 현장에서는 국가 지도자들의 표정은 대부분 속내를 감추고 있다. 숨긴 속내를 드러내 표현하는 것, 직접 드러내지는 않아도 간접적으로 표정과 행동과 제스처를 통해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 일러스트의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평창올림픽 무대를 배경으로 해서 각국 지도자들의 입장 차이를 그린 일러스트. 물론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편집자가 원하는 제스처나 분위기를 담은 사진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고 재미가 떨어진다. 이런 일러스트를 작업할 때 가장 흔한 방법은 서로 멘트를 주고받는 식이다.
트럼프는 그때그때 표정이 사악하거나, 유머러스하고 과격하게 세계경제를 다 쓸어버릴 것 같은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지나칠 정도로 희화화시키기도 하고 과감하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외국 언론사에 비하면 아주 약과인 것 같다. 우리나라 미디어들은 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의 캐리커처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외국 일러스트와 우리나라의 큰 차이점은 희화화의 정도에 있다. 외국의 캐리커처는 특징을 명확하게 뽑아서 과장하고 부각시켜서 전달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지나치지 않게 최대한 얼굴 모양을 비슷하게 그려서 표현한다.
우리 팀의 김성규 기자는 김정은 캐리커처, 일러스트를 많이 담당하고 있는데 그릴 때마다 바이라인 넣기를 많이 꺼려한다.(웃음) 표정이나 액션을 그렇게 과감하게 묘사하지 않기 때문에 데스크나 편집국 회의를 거쳐 다시 그리는 경우는 많이 없지만, 그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살 떨린다고 한다.


3. 일러스트레이터는 팩트를 녹인다
유명인들 중에는 사진이나 자료가 풍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그렇다. 장하성 실장이 대통령과 참여연대 중간에 낀 종합면의 일러스트. 어느 쪽 손을 들기도 애매한 장 실장의 입장을 잘 묘사했던 것 같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청와대, 참여연대 양측 입장을 텍스트로 정리해서 그림에 녹여내는 게 일반적인데 이 때는 이런 것들을 제목으로 커버하고 그림으로만 갔던 사례다. 우리 팀은 대부분 일러스트만 갖고 접근하지는 않고 핵심 데이터나 핵심 멘트를 같이 담아서 전달하려고 한다. 그런 경우 일러스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미투(Me too)는 일러스트로 표현할 때 난처한 경우가 많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 그리고 어떤 뉘앙스로 이 사건을 다룰 것인지. 나에게는 기준이 딱 하나 있다. 데스크를 보는 기준이기도 한데 내가 당사자가 돼 보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당했을 때, 내가 주인공으로서 이 그림에 등장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다시 한 번 성추행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그 때 상황을 되새기게 만들어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가급적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피하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다 보면 사건의 참혹함을 담기엔 부족한 측면도 있다. 신문에서 독자한테 다가가는 일러스트는 징그럽거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정도로 접근하고 있다.
가상화폐 몰락도 마찬가지다. 투자자가 추락하거나 불나방처럼 불타 없어지는 방식으로 쉽게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투자자라면? 내가 투자를 해서 실패했지만 불 타버리는 불나방 처지가 된다면 상당히 기분이 나쁠 것 같다.


4. 일러스트는 지면을 밝힌다
웹툰 도둑이야~! 이 지면은 실제 웹툰을 페이스북에 연재하고 있는 김성규 기자의 실력을 십분 활용했다. 일러스트를 진행할 때는 편집자들과 회의를 통해서 전체적인 분위기와 제목, 비주얼 콘셉트 등을 상의한다. 그 과정에서 편집자들이 일러스트레이터를 다루는(?) 방법 중에 중요한 것은 지면의 전반적 뉘앙스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전달하는 것. 가장 핵심은 제목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팀원들에게 편집자한테 물어보기 전에 기사를 미리 읽고 제목을 먼저 생각해 보라고 주문을 많이 한다. 그러고 나면 편집자들과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좋은 아이디어가 오고 갈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시각에서 기사를 바라보고, 거기에서 비주얼 키워드를 뽑아내는 능력이 편집 과정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들은 그런 뉴스나 정보를 다루는 경험이 많지 않다. 편집기자들이 제목의 방향을 잡아 나가고 제목을 뽑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기사를 읽고 거기서 어떤 기저 콘셉트를 잡을 것인지를 일러스트레이터한테 잘 전달해 주는 게 지면을 밝게 하는 지름길이다.
오비추어리(부음 기사) 지면도 그림으로 나오기도 한다.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처럼 아무 액션 없이 얼굴만 그릴 수도 있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처럼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숲과 새를 담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했던 것은 이미 전날 관련 사진들이 충분히 많이 지면에 나가서 다음날 비슷한 사진을 쓰기가 어렵고, 또한 사진으로써는 새로운 분위기 전달이 어렵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의 죽음이 화제가 됐었다. 당시 사회면에서 퓨마의 죽음을 살아있는 퓨마의 일러스트로 표현했었다. 처음에는 죽은 퓨마의 사진을 쓰려고 했지만, 죽은 동물의 사진을 지면에 크게 앉히기에는 징그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역으로 살아있는 퓨마의 사진을 쓰든지, 아니면 살아있는 퓨마를 일러스트로 다뤄보자고 방향을 잡았다. 퓨마의 표정에 집중해서 그렸던 기억이 난다.
이승엽 같은 경우에는 여러 사진이 있는데, 포즈나 표정들이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색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일러스트로 표현한다. 류현진이나 손흥민도 마찬가지다. 류현진의 투구 폼 중에 가장 멋진 포즈가 있는데, 똑같은 사진을 계속해서 쓰게 되면 지루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일러스트로 다루게 된다. 이런 일러스트는 오프라인 상에선 정보들이 곁들어 있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신문사에는 여러 직원들이 같이 일을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에도 편집부 안에 편집팀이 있고 디자인팀이 있다. 그리고 편집과 일러스트, 편집과 디자인이 어떻게 잘 융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느냐에 따라서 신문의 밝기 정도가 달라진다. 편집자를 밝게 해주는 것이 취재기자가 될 수 있지만,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가 있다. 편집자 본인을 밝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후배를 밝게 하기 위해서, 일러스트레이터들과 디자이너들을 좀 더 존중하는 문화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인성 조선일보 디자인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