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박춘원의 호모비디오쿠스

 

동영상 서비스인 유튜브가 전세계 소셜미디어의 대세라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 인터넷 동영상 시장의 74.5%(DMC Media 2019 소셜 미디어의 전망 및 현황-Datanyze)를 점유하고 있다. 월 사용자 수는 19억 명이 넘는다.(유튜브 블로그) 페이스북에 이어 전세계 2위에 해당되는 숫자다. 한국 시장 사용 점유율을 보면 더 극적이다. 2019년 5월 현재 구글 플레이에 ‘동영상 플레이어·편집기’로 등록된 모든 앱들의 총 월간 사용시간인 468억분 중 88%인 414억분을 점유하고 있다.(와이즈앱)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유튜브가 이제는 구글에 이어 세계 2위의 검색 서비스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 중 60%가 정보를 검색할 때 유튜브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나스미디어) 매월 30억건 이상의 검색이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다(mushroom.com). 특히 10대들에게 유튜브는 거의 절대적이다.
이러한 유튜브 현상은 4G 환경의 일반화로 인한 고속 모바일 환경 및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와 아울러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 확대로 인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동영상을 촬영, 편집, 공유 할 수 있게 된 것이 주 요인이라 하겠다.
그리고, 유튜브에 분당 1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지속적으로 업로드(mushroom.com) 되는 데에는 유튜브가 광고로 수익 창출이 가능한 개인 채널 서비스를 통해 기존의 매스 미디어를 대체하는 거대 미디어 플랫폼이 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유튜브 수입의 핵심인 광고 수입 부문에서 키즈 채널을 제외하고 개인이 운영하는 한국 유튜브 채널 중 수입 1위에 오른 제인 ASMR이라는 채널은 구독자 176만명에 약 92백만 조회수를 기록함으로써 월 수입 2억7,000만원 연간 약 30억원을 넘는 수입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큰 수입 외에도 유명 유튜버들은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팬덤을 몰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10대들의 장래 희망 1위를 인기 유튜버가 차지한지 이미 오래다.
이런 유튜버 전성 시대가 기존 매스미디어의 쇠퇴를 가져 오는 미디어 지형의 지각 변동을 유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필자는 유튜브가 비단 미디어 지형 변화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와 의식에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는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고질적인 전근대적 병폐들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여러 전근대적 요소들 중 대표적인 것이 족벌과 학벌이다. 과거에는 사농공상이었던 족벌과 학벌에 의한 신분체계가 이젠 금수저 등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폐습으로 온존하고 있다. 2018년 말부터 2019년 2월까지 JTBC에서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SKY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잘 묘사 되었다시피 한국은 족벌에 의해 뒷받침되는 학벌이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데 가장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그런데 유튜버로 성공하는데 SKY 학벌은 전혀 소용이 없다. 오히려 최근엔 ‘서까남TV’, 즉 서울대 출신 남자로서 서울대를 까는 콘텐츠를 제작해서 방송하는 채널이 생길 정도다. ‘서울대 졸업하면 인생 망치는 이유’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콘텐츠가 올라오는 식이다. 게임 방송 유튜버로 시작해 340만에 육박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10~20억대 연 수입을 올린다는 ‘보겸 TV’ 운영자 보겸은 SKY는 물론 인서울도 아닌 군산대학교를 나왔다. 최근 3개월 사이에 구독자 수가 10배 이상 급증, 50만 구독자를 달성해 주목을 끌고 있는 ‘그것을 알려드림’이라는 채널이 있다. SBS의 탐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처럼 구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신청 아이템에 대해 실제 심층 취재를 해서 제작한 동영상을 올리는데 요즘은 콘텐츠 조회수가 100만 뷰를 가볍게 넘는다. 이 채널을 운영하는 진용진이라는 유튜버는 상고를 나와서 다른 유튜버들 썸네일 제작 등을 하는 알바를 하다가 최근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이력을 밝힌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인기 유튜버들 중에 스스로를 속어인 쩌리라고 칭하면서 사회적으로 루저에 속하는 학력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다. 어떤 이슈 유튜버는 중졸임을 밝히고 있고 심지어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조폭 출신으로 소년원, 감방 생활 경험 등을 콘텐츠로 올리는 인기 유튜버도 있다. 이처럼 유튜버로 성공하는데 학벌과 출신 가문 등은 전혀 필수 요건이 아니다. 오로지 남다른 소재 발굴 및 창의적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제작 편집 능력, 그리고 매주 2~3개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올리는 꾸준함만이 유튜브에서 유튜버로 성공 할 수 있는 요소다.
이렇듯 유튜브는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 족벌,학벌 중심 성공 방정식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보고 성장하고 있는 10대들에게 유튜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열려 있고 노력한 만큼 공정한 보상이 주어지는 기회의 땅인 셈이다. 따라서 유튜버가 장래 희망 1위로 꼽히는게 당연하다고 하겠다. 물론 아무나 뛰어든다고 다 성공하는게 아니고 유튜브에서 성공하려면 남들 대비 몇배의 노력과 아이디어 창출을 위한 공부 등이 필요하고 오로지 콘텐츠와 마케팅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공정한 경쟁의 장이니 만큼 자신의 실패를 누구 탓으로 돌릴 여지도 없다. 여러 문제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튜브는 진정한 근대적 인간인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하며 책임지는 개인을 훈련시키고 탄생시키는 거대한 교육의 장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새로운 생태계와 사유 , 행동 방식을 지닌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공정한 룰에 의한 경쟁을 펼치며 노력에 상응한 성취가 평가되고 이에 합당하고 공평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익숙한 지금의 10대들이 성인이 될 때쯤 한국은 비로소 근대적 합리성을 체화한 개인들이 주력이 되는 그런 사회가 될 것 같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족벌, 학벌 등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 요소가 더 이상 발붙일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합리성에 기반한 소통이 일반화 되는 공론장이 점차 확대될 것이다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의 ‘Medium is the message’라는 통찰대로 동영상에 기반한 글로벌 차원의 개인 미디어 서비스가 가능한 유튜브라는 미디어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이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사유, 소통 방식, 세계관이 기존의 매스미디어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사농공상 신분제와 학력에 의한 차별이라는 구조가 와해되기 시작 할 것이다. 유튜브로 인해 한국 사회엔 총성 없는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 10대들 대부분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10년 후쯤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화가 기대된다.
위즈메타 CTO 겸 한국외대 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