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2세션 / 이철민 한국경제 차장


보수·진보 진영 신문들 사진쓰기 달라
‘맞고 틀림’ 아닌 ‘다름’의 문제일 뿐
‘다름’을 결정 짓는 건 문화적 DNA
편집 정체성 지키려면 매뉴얼화해야



 

보수진영의 신문들과 진보진영의 신문들은 사진쓰기가 다르다. 그동안 사진 관련 자료들 중에서 그 차이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면들을 추려 모아봤다. 신문사마다 다름이 있다. 이 다름은 단지 ‘다름’일 뿐 ‘맞고 틀림’의 문제는 아니다. A형 B형 등 혈액형이 다른 것처럼 다만 스타일의 차이다. 사례로 든 지면이 혹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다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강의에 앞서 양해 부탁드린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마라”
미국의 소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나단 라이언의 얘기다. 라이언은 “사진의 문제는 무엇을 찍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찍느냐다”라고 했다. 이 작가는 사진에서 일종의 착시감<사진 1>을 즐겼다. 실제와 이미지의 혼동을 주는 작품을 많이 찍었다. 미국의 또다른 다큐멘터리 사진가 짐 허버드는 UPI 종군기자 출신으로 워싱턴DC 노숙자들의 삶을 카메라에 많이 담았다. 주말마다 상류층의 사교파티가 펼쳐지는 켄싱턴 호텔 앞 고가 밑에서 생활하는 노숙자 등 사회의 불평등을 주로 고발했다. 허버드는 “사진은 그냥 찍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찍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찍느냐”라는 명제는 편집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편집도 무엇을 편집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드러나는 형태가 달라진다.
편집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책 ‘지식의 편집’에서 저자 마츠오카 세이코는 “모든 정보 편집에는 숨어 있는 동기가 있다”며 “그 숨어 있는 동기가 정보의 생김새를 결정짓는다”고 한다. 편집기자라는 직업은 정보의 생김새를 만드는 일이다. 제목을 달고 사진을 키우거나 줄이며 기사를 4단으로 할지 2단으로 줄일지 결정한다.
편집에 따라 ‘정보의 생김새’가 달라진다. 신문제작은 각사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신문사마다 매뉴얼이 있고 매뉴얼은 그 신문사 고유의 문화적 DNA를 담고 있다.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 문화적 유전자를 ‘밈(Meme)’이라 했다. 그 ‘밈’이 각사의 편집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수지와 진보지의 사진다루기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 2>는 철의 여인이라 불린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의 사진을 놓고 보수지와 진보지가 어떻게 다르게 처리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1면에 대처의 사망기사에서 ‘신자유주의자’에 대한 보수지와 진보지의 입장차가 편집에서 잘 드러난다. 신자유주의의 가치를 신뢰하는 보수진영의 신문들이 대처 사진을 비중 있게 쓴 것과 달리 진보진영의 신문들은 작게 처리했다.
예전 성공한 기업인 안철수가 대선출마할 때도 진보진영의 신문들과 보수진영의 신문들의 편집<사진 3>이 갈렸다. 진보진영의 신문들은 얼굴을 작게 처리하거나 TV 발표 화면을 쓰는 등 덜 비중 있게 처리했다. 
<사진4>는 ‘메르스 사태’ 때의 1면 편집들이다. 진보지들은 피해를 받는 시민들 입장을 대변하는 사진을 1면에, 보수지들은 정부의 ‘대처 의지’가 느껴지는 사진들을 주로 썼다.
<사진5>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을 다룬 지면들이다. 보수진영의 신문들은 하나같이 트럼프가 김정은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는 사진을 썼다. 트럼프의 ‘기선 제압’이 느껴진다. 이와 달리 진보진영의 신문들은 나란히 걷거나 악수하는 손이 가운데 있는 사진을 골라 ‘대등’한 느낌을 줬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을 만났을 때의 사진<사진6>은 또 정반대다. 보수지들은 ‘균형’에, 진보지들은 반대로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런 것은 약속한 게 아니다. 경향이 한겨레에 전화해서 ‘우리 1면 사진 같이 쓰자’고 한 게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잡혀간다.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사진의 경우도 비슷한 사진을 썼지만 의미는 보수지와 진보지가 조금씩 다르다. ‘개헌확보 실패’에 초첨을 맞춘 진보지들은 ‘당선 인증꽃’이 적은 아베 사진을 쓰고 ‘과반 득표’를 강조한 보수지들은 꽃이 많이 보이는 사진을 썼다. 


매뉴얼, 신문편집의 시작과 끝
밈이 외부적으로 드러난 형태가 매뉴얼이다. 매뉴얼은 신문의 시작과 끝을 책임진다. 1면에 이미지를 크게 쓸 것인가, 텍스트를 크게 쓸 것인가 등은 매일매일 달라진다. 매뉴얼은 회사의 정체성이다. 예전 편집이 ‘개인기’에 의존했다면 앞으론 ‘팀플레이’에 의한 편집이 돼야 한다. 그 회사의 정체성과 컬러가 편집을 통해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편집기자들은 편집을 하지만 독자들은 무의식적으로 해석을 한다. <사진7, 8>은 같은 사진을 썼지만 <사진7>은 김정은에 포커스가 <사진8>은 트럼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건 의도하진 않았지만 시각적으로 그렇게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이다.
광수세계수영선수권대회 기사에서 1면에 수영장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 사진을 쓸지, 선수들의 연습동작을 클로즈업해 쓸지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도 매뉴얼이 잘 돼 있으면 쉽게 결정할 수 있다.


템플릿 편집의 승부처도 사진
이런 매뉴얼들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작용하면서 시스템화되면 편집은 템플릿화된다. 템플릿화된다는 것은 지면 디자인이 ‘디폴트’ 된다는 것이다. 디폴트된 디자인으로 편집을 돌리다 보면 편집은 사실 편하다. 편집기자들도 편하다. 기계적으로 편집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이미지다. 머니투데이 조남각 부장이 미디어리터러시에 대해 얘기하지만 이미지 리터러시도 중요하다.
편집기자들은 매일 텍스트와 사진을 접한다. 1년 지나고 2년 지나다보면 저절로 이미지를 다룰 수 있는 능력들이 알게 모르게 다들 생긴다.
템플릿 편집의 전형이 ‘킨포크’ 잡지다. 킨포크의 매뉴얼은 단순하지만 매번 새로움을 주는 편집을 선보이곤 한다. 그리드를 잘 잡으면서도 사진의 콘트라스트<사진 9>가 좋다. 안과 밖의 이미지, 상반신과  전신 이미지, 앞모습과 뒷모습 등 콘트라스트를 주는 기법이 탁월하다.
이런 잡지의 사진쓰기는 영국 유럽 신문들도 같은 원칙을 공유한다. 가디언도 타임즈도 FT<사진 10>도 사진을 왼쪽 면과 오른쪽 면을 달리해 쓴다. 한국 신문들도 왼쪽 면과 오른쪽 면의 사진을 대칭적으로 쓰거나 비대칭으로 편집해 리듬감을 주는 편집이 많다. 
영국의 가디언은 지난해 판형을 또 바꿨다. 기존 베를리너에서 타블로이드로 크기를 더 줄여 놓았다. 지면이 바뀌면 편집도 바뀐다. 바뀐 편집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이미지 사용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을 뉴스의 조연(보조재료)으로 쓰는 것을 넘어 뉴스의 주연(메인재료)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사진 11>
동영상과 이미지 시대다. 신문편집에서 사진 활용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편집기자들도 ‘이미지 리터러시’ 능력을 더 많이 키워야 한다. 제목을 뽑기 위해 텍스트의 ‘야마’를 잡듯 비주얼 편집을 위해 이미지의 ‘야마’를 빨리 잡아내는 노력도 필요하다.


강연후기

손짓·눈짓·몸짓 사진은 ‘스리 짓’이다

권기현 매일신문 기자

신문사마다 각기 고유한 ‘DNA’를 지니고 있다. 요즘처럼 다양성을 중요시 여기는 시대에 보수와 진보, 둘로 갈려 정반대의 시각을 보여준다. 독자 입장에서는 때로는 자신의 입맛과 맞지 않은 쪽을 싸잡아 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념적인 성향은 신문사의 관점과 해석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일 뿐. 어느 한쪽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보수와 진보 신문들의 논조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사진의 선택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이철민 한국경제신문 차장의 ‘보수지와 진보지의 사진 쓰기가 다른 이유’ 강연은 그 차이를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수많은 예시 중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사진의 차이는 앞서 말한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보수 신문의 경우 대부분 트럼프가 김정은의 손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사진을 사용해 기선 제압을 하는 모습을 잘 나타냈다.
반면 진보지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걷거나, 손을 맞잡은 장면을 클로즈업해 대등한 느낌을 보여줬다.
사진은 신문 전체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힘을 가진 사진을 결정하는 것은 편집기자의 몫이다. 이런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사진의 힘을 결정하는 ‘Three JIT(세 가지 짓)’을 알아야 한다. ‘Three JIT’은 한국 북디자인의 개척자인 정병규 선생이 고안해낸 ‘손짓, 눈짓, 몸짓’을 줄여서 표현한 말이다. 이 세 가지 짓은 피사체가 독자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사진 중 ‘Three JIT’이 잘 표현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 권한이 없어도 상관없다. 편집기자에게 트리밍이라는 강력한 칼이 있다. 편집기자는 손짓, 눈짓, 몸짓 잘 살려 사진의 인물 돋보이게 만들 수 있고, 안보이게 숨겨 힘을 뺏을 수도 있다.
각 신문사마다 매뉴얼이 있을 것이다. 이에 순응하며 맞춰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집기자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더 다듬어 개발해 나간다면 더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