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달의 편집상은 한 달간 고군분투한 편집기자들의 수많은 지면 중에서 ‘최고의 작품’에 부여하는 영예다.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제목, 뉴스를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계산한 레이아웃.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가 최상의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야 가능하다.
편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낮은 연차의 기자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같은 날 같은 뉴스를 편집한 기자들에게는 사고의 전환을 깨우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지난 1년간의 수상작들을 살펴봤다. 어떤 작품들이 상을 받았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트렌드를 분석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잡다한’ 내용들이 조금 들어있다. 아직 수상의 영광을 누리지 못한 회원들이라면 따로 보관해뒀다가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


#지방 회원사 수상작 24개 ‘돌풍’

24.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 중 지방 회원사 작품 수.
전체 수상작이 49개이니, 수치상으로는 0.5개가 모자라지만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숫자다.
전년 같은 기간(2017년 11월~2018년 10월) 지방 회원사 수상작은 14개. 1년 만에 10개가 늘었다. 지방 회원사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쟁력을 많이 키웠다는 의미다.
신문사별로 살펴보면, 영·호남, 경기, 충청, 강원 지역 회원사들이 모두 상패를 최소한 하나씩 손에 넣었다.
가장 많은 5편의 수상작을 보유한 곳은 광주일보. 매일신문과 경남신문이 각각 4편을 수상해 공동 2위에 올랐다. 경인일보와 부산일보는 3편, 충청투데이가 2편을 수상했다. 강원도민일보, 기호일보, 인천일보도 각각 상패를 한 개씩 가져갔다.
종합과 경제·사회 두 부문에서 지방 회원사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수상작은 모두 14개. 전체 24개 중 절반을 넘는다.
중앙일간지 중 최다 수상 회원사는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5개의 수상작을 배출했다. 전년 같은 기간 7개를 거머쥐었던 ‘편집상 킬러’의 면모를 올해도 보여줬다.
경제지 수상작도 12편이나 됐다. 전자신문이 가장 많은 4편. 전년 같은 기간 '심기 불편한 날' 싹을 틔우고 '春春 전국시대'를 열며 8개 작품으로 최다 수상 1위를 차지했던 전자신문은 올해도 감각적인 지면을 선보였다. 뒤를 이은 서울경제의 수상작 세 작품은 특이하게도 모두 2개 면을 이용해 시원하게 편집한 브릿지 지면이다.


#개인 최다 수상자도 지방 회원사
개인 최다 수상자 역시 지방 회원사에서 나왔다. 광주일보 유제관 부장이 그 주인공. 유 부장은 한 해 동안 상패를 무려 4개나 가져갔다. 특히 지난 6월에는 종합부문과 문화·스포츠부문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달의 편집상을 현행 4개 부문별 시상 방식으로 개편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지난 2003년 당시 세계일보 이진수 기자(현 중앙일보 차장)가 제목과 레이아웃 부문상을 동시 석권한 이후 16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다.
유 부장에게는 특별한 기록이 하나 더 있다. 5·18 지면으로 두 차례 수상했다. 지난 2016년 5·18 기념행사에서 ‘임을 부른 행진곡’ 제창 문제를 다룬 <광주는 ‘임’을 부르고 싶다>로 176회 이달의 편집상을 수상했다. 같은 작품으로 유 부장은 22회 한국편집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는 5·18 관계자들의 증언과 정치권의 망언을 다룬 <못 밝힌 ‘진실’…못 끊은 ‘왜곡’>으로 또 한 번 수상자 리스트에 올랐다. 매년 5월이 되면 생각나는 광주와 함께, 유 부장의 수상 여부도 관심사가 됐다.
이 밖에 매일신문 남한서 차장이 3편, 경남신문 강지현 차장·경인일보 김영준 차장·부산일보 김동주 차장이 각각 2편씩 수상해 지방 회원사의 힘을 보여줬다.
 
#아픈 무릎도 때리게 만드는 센스
우리나라 조선업의 세계 1위를 다섯 글자로 표현한 <조선은 한국>, 코엘류 감독이 이끌던 축구 국가대표팀이 오만에 패했을 때 <오만이 아니라 자만에 졌다>, 맨홀 뚜껑 절도범이 기승을 부리자 <‘강철 심장’ 고철 도둑>….
10년이 훨씬 넘은 2000년대 초반 수상작들이다. 오래된 제목이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다. 지금 봐도 해학과 풍자가 넘쳐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언어의 조탁이 빛나는 제목들이 많았다.
광주일보 유제관 부장의 ‘2강 in’이 대표적. 한국이 U-20 월드컵 결승전에 오를 때 대표팀 선수 ‘이강인’에 아주 절묘하게 대입시켰다.
아주경제 최주흥 기자의 <中 ‘금리장성’ 낮췄다…獨 ‘재정장벽’ 허문다>도 센스 만점. 사진 한 장 쓰지 않은 지면이지만 시각적인 효과도 훌륭했다. 요동치는 그래프와 직선만으로 중국의 ‘만리장성’과 독일의 ‘장벽’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을 연출해냈다.  
전자신문 박은석 차장과 황정우 기자의 <‘접전’이 시작됐다> 또한 중의적 제목의 진수를 보여준다. 폴더블폰(접히는 스마트폰)의 불꽃 튀는 경쟁을 예고하는 기사에 편집기자는 ‘접신’을 한 듯 기가 막히는 단어를 선택했다. 
디지털타임스 김효순 기자의 <요즘 말실수하면 ‘불매’ 맞습니다>는 2단 짜리 기사의 제목이지만 ‘불매’만큼이나 화끈하다. ‘구매 거부’와 ‘불같은 매’ 2가지 의미를 담아 두 배로 아플 한방을 날렸다. 
패러디 제목도 빠지지 않았다.
세계일보 이대용 기자의 <내 몸이 문제인가, 강사가 문제인가>는 영화 ‘극한직업’의 대사를 기사에 맞춰 바꾸고, 거꾸로 매달려 괴로워하는 요가 수강생 그림을 넣어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모두 잡았다.
경남신문 이지혜 기자의 <나 혼자 산다(buy)> 역시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을 살짝 비틀었다.
충청투데이 유명환 기자의 <요즘 정치, 출연보다 연출>, 경남신문 강희정 차장의 <‘삶 같은 연극’이 보여줄 ‘연극 같은 삶’>, 광주일보 임수영 차장의 <SK 뒤집다 KS>처럼 앞뒤 글자나 문장을 재치 있게 바꿔 의미를 전달하는 제목들도 여전했다.



북미회담·한일관계… 굵직한 이슈엔 ‘한방’의 힘


#큰 이슈에는 묵직한 스트레이트 한방
올해의 가장 큰 이슈를 꼽자면 ‘혼돈의 한반도’가 아닐까. 2월 북미 회담 결렬,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 이후 이어진 북한의 도발.
매일신문 남한서 차장의 <惡手로 끝난 악수>가 눈에 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악수로 시작한 2차 북미회담은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충격적인 결렬로 끝났다. 그들의 악수는 말 그대로 ‘惡手’가 됐다. 이런 이슈에는 결렬, 무산, 충격, 비핵화 험로 같은 단어가 큰 제목으로 나올 법하다. 하지만 그 단어들 대신 비유와 은유를 사용해 예상 밖의 ‘한 수’를 뒀다.
충청투데이 유명환 기자의 <축포는 방사포로 변했다>도 돌연 태도가 바뀐 북한을 제목으로 잘 잡았다. 남북 간 상황의 변화를 한 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슈를 다룬 뉴스 면에서 묵직한 스트레이트 ‘한방’의 힘이 느껴지는 제목도 많았다.
중앙일보 임윤규 차장과 김호준 부장의 <이웃집 괴물, 7번 막을 기회 있었다>가 가장 모범적인 예다.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을 차분한 지면 구성과 담담한 제목으로 담아냈다. 큰 이슈가 된 사건 뉴스를 다음날 신문에 어떻게 내보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몇 명 죽고 몇 명 다쳐’ 식의 제목을 달았더라면 이렇게 눈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원도민일보 안영옥 차장의 <산불에 놀란 가슴, 지진이 또 흔들었다>는 동해안 주민들이 느꼈을 고통을 군더더기 없이 담았다. 조금 더 튀려고 하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제목의 강도가 흔들렸을 것이다.  
경향신문 장용석 차장의 <346만5239명이 김용균으로 산다>는 마음이 아프다. 노동자 김용균의 삶을 우리 사회가 외면했지만 350만 명에 가까운 우리 곁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을 알리는 제목이다.
국민일보 이영미 부장의 <이별, 목숨 걸어야 할 수 있나요>는 데이트 폭력의 피해 입은 심정을 어떠한 기교 없이 가장 잘 표현했다. 수상작 모두 간결하게 가슴을 울리는 제목으로 독자의 마음을 잡았다.


#사진을 보다가… 제목이 보였어
편집기자는 글자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기사를 아무리 읽어도 제목 한 줄 뽑기가 어려울 때는 눈을 돌려야 한다. 기사의 내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그러면 사진이 먼저 말을 걸어올 것이다.
세계일보 정현정 차장의 <만나자 이별>은 올해 사진편집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노란 카페트처럼 거리에 예쁘게 내려앉았다가 얼마 못 가 추풍낙엽처럼 뒹구는 단풍잎이 지면에 가득하다. 고즈넉한 풍경의 늦가을의 정취를 마치 연인들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표현했다.
경향신문 구예리 차장의 <섬, 섬, 섬, 발길 멈춰 섬>은 휴식 같은 여행 면에 아득한 섬처럼 떠 있는 편집을 했다. 인천의 삼형제 섬 신도·시도·모도를 ‘섬, 섬, 섬’으로 표현한 것이나, 사진 속에서 의자에 앉아 뒷모습만 보이는 여인 옆에 ‘발길 멈춰 섬’이라는 제목에서 내공 있는 편집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매일신문 남한서 차장의 <산천은 제 色 드러냈지만 일본은 ‘본색’ 숨겼을 그때> 역시 사진에서 받은 느낌을 담아 제목으로 뽑아냈다. 일본 닛코국립공원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인 가을 색에서 ‘색’이라는 단어를 추출해 일본의 두 얼굴을 나타내기까지 사진과 얼마나 싸웠을까. 편집기자의 고민한 흔적이 제목에 나타나있다.
한국일보 김소영 기자의 ‘재개발,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는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 현장에 붉은 래커로 표시된 ‘X’를 지면에 과감한 크기로 끌어왔다. 피처 지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서울경제의 작품들은 브릿지 지면을 활용해 편집의 힘을 극대화했다. 이동수 차장과 김은강 기자가 함께 작업한 <공간을 열다, 공감을 얻다>와 <내 안의 火가 내 밖의 禍로>는 미술기자는 이미지의 힘을 살리고 편집기자는 제목의 힘을 살려 2개의 지면에서 하나가 된 힘을 발휘했다. 두 기자가 머리를 맞대어 ‘같이’의 가치가 돋보였다.
경인일보 김영준 차장의 <빛바랜 ‘흑백사진’ 다시 빛나고 있다>는 1면 톱기사가 스트레이트 성 뉴스가 아닐 때 말랑말랑하게 만질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1면에 실린 흑백사진을 받쳐준 제목이 빛났다.


#내년에도 ‘빛’을 보자, 디자인부문도…
올해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 중 수작이 많았지만 한국편집상에는 한 작품이 올랐다. 
한국일보 윤은정 기자의 <빛은 돌아왔지만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가 그것. 윤 기자의 제목처럼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 내년 한국편집상에서 ‘빛’을 보기를 기다린다.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은 아니지만 함께 후보에 올랐던 경쟁작 중에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각자 취향의 차이가 있었을 뿐. 빛을 보지 못했더라도 어두운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기를.
지난해 1개에 그쳤던 디자인 부문 수상작이 올해는 한편도 없다는 점은 아쉽다. 미술기자를 대상으로 한 디자인 부문상이 2016년부터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도가 떨어지면서 응모작이 차차 줄었다. 미술기자들의 적극적인 응모가 필요하다.
내년에도 좋은 작품을 만나기를 바라며, 한 해 동안 지면 위에 뉴스를 담아내느라 고생했을 모든 편집기자들에게 큰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