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코로나 편집분투기 / 매일신문 남한서 차장 /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거리’를 둔다. 백화점과 은행이 폐쇄가 됐다. 저녁이 되면 골목을 환하게 밝히던 동네 가게들도 불이 꺼졌다. 식당과 술집들이 휑한 기운을 못 이겨내고 문을 닫았다. 사는 게 힘들어졌다. 모두가 비명을 지른다. 호환, 마마보다 더 지독하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재앙이 된 한 달. 대구는 점점 유령도시처럼 변해갔다.
3월이 되어 꽃은 피었지만 ‘웃음꽃’은 사라졌다. 대구의 진정한 봄은 언제 올까.


#1월부터 2월 초 ‘청정지역’이었던 대구
우한 폐렴. 국제 면에서 1월 초부터 유독 눈에 띄었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 20여명이 발생했다. 심상찮아 보였다. 중국의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급기야 우리나라에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설이 지난 뒤 17번 확진자가 대구를 다녀갔다는 뉴스가 전해졌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다. 2월 들어서도 확진자가 ‘0’에 머물러 대구는 청정 지역으로 느껴졌다.


#2월 18일 고통의 시작점이 된 그날
2월 18일은 대구 시민들에겐 슬픔으로 기억되는 날이다. 2003년 지하철 참사로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대구에서 첫 확진자(31번)가 나왔다. 확진자의 동선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회사-교회-병원-호텔 뷔페. 어떻게 이럴 수가. 저녁엔 이 확진자가 특정 종교의 신도라는 얘기가 나왔다. 2차, 3차 감염자가 엄청나게 발생할 것 같은 불안감. 어쩌면 그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대구는 괜찮을까.


#2월 19일 마스크 쓰고 일하니 불편함

결국 일이 터졌다. 31번 확진자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대구경북에 20명이 더 늘었다.
회사의 전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출근했다. 퇴근할 때까지 벗지 않았다. 편집데스크나 출고 부서 사람들과 상의해야할 땐 서로 말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답답했다. 마스크 줄 때문에 하루 종일 귀가 아팠다. 일하다 재채기라도 나오면 눈치가 보였다. 옆자리 동료에게 말을 거는 것도 될 수 있으면 피했다. 


#2월 23일 유령도시처럼 거리엔 적막감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하는 데 자가용으로 30분이 넘게 걸리던 길이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시내도로가 뻥뻥 뚫렸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적막감이 감돌았다.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코로나 대구 확진자가 200명에 이를 만큼 폭발적으로 늘었다. 비상시국인 만큼 회사에선 감면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코로나 관련 지면은 10개로 늘었다. 저녁 판 2개씩 맡을 수도 있는 상황. 기사는 작업 중에 교체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누구도 짜증내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2월 26일 ‘재택 근무’ 시나리오 나왔다
31번 확진자 발생 8일 만에 대구경북에서만 누적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편집국에선 ‘재택 근무’ 시나리오가 나왔다. 발행 면수를 줄이고, 편집부는 2개조로 나눠서 원격 작업하는 것이 주 내용. 밖에서 전화와 ‘카톡’으로만 처리하려면 꽤 불편해보였다.
첫 확진자가 나오고부터 저녁 시간에 밖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다. 퇴근 후 곧장 집으로 들어가서 해결했다. 야근 때면 컵라면과 즉석 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끼리 술 한 잔은커녕, 밥 한 그릇 같이 먹는 것도 힘들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불편함이 따르지만 지금은 적극 동참할 때다. 


#3월 3일 따뜻한 마음 담긴 “힘내요 대구”
협회에서 손 소독제를 보내왔다. 대구 회원사 3사(대구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에 보내준 감사한 위문품이다. “어려운 시기에 힘 내세요”라는 편지와 함께.
며칠 뒤엔 마스크도 도착했다. 따뜻한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저마다 책상에 두고 소중하게 사용했다. 


#3월 10일 증가세 꺾인 대구 확진자
며칠 동안 소규모 집단 감염이 이어졌지만, 확진자 증가세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날 0시 기준으로 확진자가 100명대 아래로 떨어졌다. 741명에 달했던 대구 확진자 증가세가 10일 만에 92명으로 줄어들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진 겨울을 지나고 나면, 잊지 않고 봄이 다시 찾아오듯 말이다. 집-회사 생활만 거의 한달 째 계속돼 답답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3월 18일 봄이 찾아오듯 희망 잃지 말자
첫 확진자가 나온 지 한 달이 됐다. 콜센터나 요양병원에서의 집단 감염이 일어나고 있지만, 서서히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에 처하자 건물주들은 ‘착한 임대료’ 행렬에 동참했다.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 때도 대구경북 사람들은 질서 있는 모습을 보였다. 특정 종교와 병원 등을 제외하면 지역 내 일반인 감염 사례는 비교적 적었다. 모두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한 덕분일 테다. 대구경북 사람들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모두 조금만 더 노력하자. 힘내자 대구 경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