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말밑은 알 수 없지만, 순우리말이라는 상고대. 사전 뜻풀이만 보면 좀 밋밋하다. 늦가을 겨울 사이 높은 산이나 강변에 피어오른 순백의 절경을 접해 봐야 웅숭깊게 다가온다. 표준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7개 한자어 중에 무송(霧淞/霧凇)이 상고대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한자사전에서 송(淞)의 새김말도 상고대다. ‘얇게 저미거나 곱게 다진 물고기 살’을 어송(魚松)이라 한다. 松이 촘촘하지 않고 성긴다는 뜻이니 얼음 결정(冫)의 색깔과 모양이 어떠한지 미루어 알 수 있다.

중국에서 霧淞은 연송(軟淞·soft rime), 경송(硬淞·hard rime)으로 구분한다. 송나라 때 자림(字林)이 최초의 문헌이라 하는데, ‘나무에 진주처럼 맺혔다’ ‘나무마다 꽃으로 피었다’ 등 시적 표현으로 소개된다. 그래선지 독특한 미적 특성을 살려 빙화(氷花), 상화(霜花), 설류(雪柳)라 불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절경으로는 길림성 송화강의 작은 섬 무송도의 ‘송산무송’이 꼽힌다.

일본에서는 무빙(霧氷)이라 하고 수빙(樹氷·soft rime), 조빙(粗氷·hard rime), 수상(樹霜)으로 구분한다. 더러는 정원이나 들판에서 피는 상고대를 시모노하나(霜の花)라는 예스러운 표현을 살려 쓴다. 고원에서 피는 상고대는 히요노하나(霧氷の花), 효카(氷花·氷華), 고리노하나(氷の花) 등이 쓰인다. 일본에도 즐겨 찾는 상고대 명소가 있다.

영어에서는 ‘rime ice’(soft rime, hard rime) 또는 ‘air hoar’(hoarfrost)라고 한다. hoar에서 백색 얼음 결정이라는 뜻이 드러난다. 고산 지대에서 피는 독특한 형태의 상고대를 ‘frost flower’라 한다.

 더러는 연한 상고대를 수빙, 굳은 상고대를 조빙이라 하는데, 한자와 연관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rime’의 번역어로는 중국의 연송·경송처럼 연한 상고대·굳은 상고대가 자연스럽고, 일본의 예에서 번역상 연결고리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한라산 상고대, 덕유산 상고대, 소양강 상고대라 하면 이미 경관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상고대는 지역의 식생과 지형, 기온과 습도, 바람의 세기와 기류 변화에 따라 독특한 형상으로 피어오르며 경관을 형성한다. 위에서 보듯, 의미적 요소와 심미적 요소, 경관적 요소가 녹아든 말이다.

여기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사전에 서리꽃, 성에꽃이 있기는 한데, 그만 창틀에 갇혀 죽은 말이 되어가고 있다. 서리꽃은 창문에만 피는가. 나뭇가지나 입 줄기, 땅 틈새, 벽이나 유리창 등에 엉긴 서릿발의 묘태를 뭐라 이를까. 서리꽃만 한 게 또 있나. 눈은 이미 꽃이 되었고, 북한에서는 눈서리도 꽃으로 핀다. 성엣장이 날 풀릴 때 물에 떠도는 얼음 덩어리인 유시(流澌)에서 온 말이라면, 유리창에 성에꽃 피듯 얼음꽃을 피우지 말란 법도 없다. 얼음 덩어리가 녹아 바람결에 승화하면서 상고대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잘한 이슬 촘촘히 맺히면 이슬꽃도 피워 볼 일이다. 봄꽃이 한창이다. 꽃길 걸으며 올 늦가을에서 겨울을 나며 상고대 풍경에서 서리꽃을 피워 올리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세계일보 교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