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코로나를 앓았습니다, 뭣이 중한지 알았습니다


2월 4일 오전 8시 

전화가 울렸습니다

"마포보건소인데요, 코로나 양성입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앰뷸런스가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격리병동에서의 12일

열이 39도와 40도를 오르내렸습니다

얼굴과 두피에 열꽃이 피었습니다 

누가 두들기는 듯한 근육통

어쩔 줄 모르겠는 몸살과 두통

입덧 같은 메스꺼움

하루 종일 이불 뒤집어 쓰고 천정을 못 본 날도 있었고

먹는 진통제가 안 들어 주사 진통제를 연이어 맞은 날도 있었고

하루 종일 토한 날도 있었고

아무 것도 못 먹은 날도 있었습니다

열흘째 열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퇴원했습니다

(7~8일 이상 격리하고 열이 37도 위로 이틀 이상 안 오르면 다른 증상이 있어도 퇴원시킵니다 의학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시키지 않는 상태랍니다)

2월16일

집채 만한 코로나 격리병동 철문이 

내게 열리는 날

교도소 출소 같은 퇴원을 하는데

하늘에선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택시 타고 집으로 가는데

나뭇가지 위로 쌓인 눈이

하얀 지우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지우개 같은 눈 뭉쳐

지난 12일을 지우고 싶어서였을까요? 

피식 한 번 웃고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제대로된 표정이

봄새싹처럼 돋더라고요

그리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니

제 주변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고요 

격리병동에서의 12일

회사의 배려로 집에서 보낸 

휴가와 재택근무 20여일 

한달 남짓 오로지 내 몸과 마음을 살폈습니다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우선 뭣이 중한지 정리가 됐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중했습니다 

내 손 닿는 곳

내 눈 닿는 곳

내 맘 닿는 곳

그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람 

이제 뭣이 중한지

더 확실해졌으니

더 확실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간엔

연초가 되면 건물을 신축하듯

1년을 위한 그럴듯한 

목표달성 설계도를 만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설계도 따라 

건물을 아득바득 올렸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돌아 

1년 지나 또다른 새해가 돌아왔을 때

뭔가 그럴듯한 신축 건물 하나

내 손에 쥐겠다는 욕심으로요

그렇게 빡빡하게 

뭔가를 채우기만하고 살았습니다

올핸 신축년이지만 

뭔가를 신축하며 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내 일과 삶을 조금씩 개축하고 편집하며 살 생각입니다

마음 속에 지우개 하나 품고

내 손 닿을 필요 없는 것

내 눈 닿을 필요 없는 것

내 맘 닿을 필요 없는 것

하나 하나씩 지우고

마음 속에 호미 하나 품어

내 손 닿는 것

내 눈 닿는 것

내 맘 닿는 것들이

좀 더 큰 숨을 쉴 수 있도록 고랑을 파고 

내 보폭을 알고

핵심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 있다는 것 

마음 속 깊이깊이 새기고

내 가진 것 더더욱 가꾸고 

나와 연 닿는 인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코로나

이 고얀 놈이

이런 뜻밖의 깨달음을 

마음 문 앞에 놓고 가네요 



P.S. : 아직도 후유증이 있습니다.입덧 같은 메스꺼움 탓에 비린 것,기름기 있는 것 못 먹고 밥과 풀만 먹습니다. 두통으로 진통제를 먹고 있고, 아침이면 한잠도 못잔 듯한 피곤함에 침대 밖으로 나오는데 한참 걸립니다.

코로나 완치자요? 이 말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염 위험 없는 퇴원자'라고 해야합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 환자 177명을 추적조사했는데,확진 판정을 받고 9개월 뒤에도 1가지 이상의 증상을 나타낸 환자가 30.5%라고 합니다.코로나를 앓고 있을 때 고통도 심하지만,후유증 또한 고통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