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4월의 첫날, 미루고 미뤘던 휴가를 내고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습니다. 푸른빛 봄 바다를 보면서 겨우내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를 뚫고 간 제주엔 봄볕은커녕 거센 바람, 에메랄드빛 바다 대신 동해 뺨치는 거친 바다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게 아닌데… 우산도 뒤집어지는 제주 바람에 걷기도 포기하고 그저 멍하니 바다를 보기로 했습니다. 20번도 넘게 왔던 제주에 이렇게 쳤던 적이 있었나 싶게 거세고 세찬 파도였습니다. 울부짖는 제주 파도를 보고 있노라니 처음엔 무섭다가 어느 순간 가슴이 뻥 뚫리더군요. 그동안 겹겹이 쌓여있던 스트레스도 떠밀려 갈 만큼… 

예쁘고 설레는 바다를 기대하고 떠났던 여행에서 위로받은 건 거칠지만 가슴을 울리는 제주의 파도였습니다.

한국일보 3면들은 늘 제겐 제주의 거친 파도 같은 지면입니다. 화려하고 쨍한 봄 바다처럼 한눈에 사로잡지는 못하지만 보고 있노라면 내 속이 뻥 뚫리는 제목들. 

 어느덧 편집 15년차, 처음엔 예쁘고 설레는 지면들이 좋았습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레이아웃, 말맛을 더한 제목, 화려하게 빛을 뿜는 지면에 마음이 흔들렸었습니다. 그러다 5년차, 10년차 시간이 갈수록 거친 사내 같지만 늘 곁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린 묵직한 한 줄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더군요. 

어느 순간 우리 신문 다음으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신문, 1면만큼이나 궁금한 3면의 제목. 어떤 날은 그 누구보다 날카롭게, 어떤 날은 더없이 적확하게, 어떤 날은 흔들림 없이 엄중하게 때린 한 줄. 그 누군가는 ‘색’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날의 가장 큰 뉴스들의 진검승부가 펼쳐진 3면에 한 줄 내공으로 투박하게 쏟아내는 그 자체가 ‘색’이 되는 지면을 보면 “아, 나도 저런 내공, 저런 힘 있는 제목 달고 싶다” 조용히 읊조리게 됩니다. 

그 예전 존경했던 편집부장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어느 쪽을 까거나 편드는 건 쉽다. 그 사이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정확하게 다는 게 가장 어렵다”라고. 오늘은 알 것 같다가도 내일은 또 모르겠는 편집의 길. 온라인이 대세라고,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신문의 길. 그 불안한 길을 가는 와중에도 늘 당당하게 거센 한 줄을 풀어내는 지면을 보면 “그래! 그래도 편집이지”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합니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더 궁금해지는 3면, 오늘도 내 마음속의 편집 교과서를 펼칩니다. 

 서울신문 신혜원 기자




<한국일보 3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