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마른 화초가 지면 위 작은 화분에 심어져 있었다. 푸르고 생생한 기운이라곤 없이, 야근을 마친 편집기자의 어깨처럼 이파리가 늘어진 풀. 잎은 만지면 파사삭, 소리를 내며 담뱃재 같은 파편으로 부서질 것 같았다. 모종삽이 그 전에 화초를 갈아엎어 버리겠다는 듯 매끈한 자태로 흙 속에 몸을 파묻고 있다. 그 아래에는 ‘심기 불편한 날’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더 이상 식목 최적기로 보기 어려워진 4월 5일 식목일 이슈를 다룬 기사였다.

'심기 불편한 날’. 온난화로 오른 기온이 식물을 식재하기 적합한 온도가 아니어서 불편하다는 의미와, 식물을 심기 적당하지 못한 온도에 식목을 하자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의미를 다 담은 제목은 탁월했다. 신문 지면만이 갖는 힘도 있었다. 온라인 기사의 제목으로 ‘심기 불편한 날’ 이라고 들으면 무슨 이야기일지 감을 잡기 어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지면의 풀죽은 화초는 제목을 살렸다. 

여백이 많은 지면을 보면서, 탁월한 실력의 가수는 백댄서나 밴드와 함께 무대를 채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기타 하나 들고 홀로 앉아 노래를 불러도, 가만히 서서 발라드를 부르더라도 좋은 노래와 가수는 감동을 주는 법. 이 지면은 지나치게 채우지 않았기에 더 빛나기도 했다. 언제나 투머치를 추구하며 이것저것 장식적 요소를 더 넣으려다 손만 많이 갈 뿐, 눈이 안 가는 제목이었던 내 지면을 돌아보게 했다. 실제로 이 지면이 199회 이달의 편집상 피처부문을 수상했을 때, 그 부문 후보 경쟁작이 내 지면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싶었지만 필패의 예감이 들었다. 제목의 힘, 여백의 미, 절제의 중요성이 지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스레 다시 느꼈다.

나는 이 지면을 대전 지역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NIE 교육 자료로 활용했다. 신문이 무엇이고 편집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만든 교육 자료는 편집기자가 아닌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제목과 이미지가 필요했다. 자료 중에는 ‘高, 스톱.’ ‘반도 못 뛰고…’도 있었다. 이 지면 덕분에 신문 교육의 반응은 좋았고 내 지면에 대한 성찰도 할 수 있었다. 

NIE 교육에 참가한 신문반 학생들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신문을 제작하는지, 편집기자는 어떻게 일하는지 질문이 많았다. 나무 심기의 불편함을 와 닿게 한 지면의 힘은 어쩌면 교육을 받은 학생들 중 누군가에게 기자의 꿈을 심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편집기자로서 반성의 씨앗을 심어준 지면이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한국일보 박새롬 기자


<전자신문 2018년 4월 2일자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