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신문 1면 헤드라인 리뷰 (하)


지난 회에 이어, 같은 날(2021.5.17.) 신문 1면에 실린 기사와 헤드라인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기사의 제목은 1차적으로, 기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뽑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독자의 환기를 촉구하는 전략이 숨어들 수도 있고, 유머나 긴장을 발생시키는 목적을 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기사와의 연관(聯關)을 암시하거나 어떤 사건이나 상황, 혹은 발언과의 연상(聯想)을 담기도 합니다. 단순히 숫자만을 담을 수도 있고, 기호만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엉뚱한 접근으로, 뉴스를 새롭게 파악하도록 하는 전략을 쓸 수도 있습니다. 

특히 1면 헤드라인의 경우에는 더 많은 전략 구사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신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제목이 등장하기도 하고, 막 신문과 접촉하기 시작한 독자의 캐주얼한 시선을 붙잡기 위해, 유혹이나 매력을 배치하는 방법도 씁니다. 또 차별화를 위해, 예상되는 다른 신문의 동일기사 제목을 피하여 색다른 방식의 문장과 콘텐츠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문 1면의 제목을 읽는 일은, 그 신문의 소통 역량과 뉴스 센스의 수준을 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편집기자는, 독자의 시선으로 신문을 읽을 수도 있지만 편집의 시선으로 헤드라인을 읽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림1] '물'자랑 하는 법



 오래된 지역지로, 성가(聲價)를 유지해온 신문입니다. 기사의 내용을 가다듬어 보면, 

 환경부가 선정한 ‘혁신형 물길' 20곳 중에 9개 기업이 대구의 업체라는 얘기입니다. 

 이 지역의 많은 기업들이 ‘혁신형 기업'으로 뽑힌 것은 대구시 달성군에 있는 국가물산업클러스터와 

 한국물기술인증원이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톱기사로 다룬 이 뉴스의 주제목(主題目)을 볼까요.


국내 혁신형 물기업 1번지 대구


1면 편집기자는 이번 환경부의 선정이 대구의 경쟁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혁신형 물기업'의 최고 산실이 대구라는 얘기입니다. 이 헤드라인은 그러나 문서처럼 딱딱한 기분이 들고 뭔가 덜 매조진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5개의 명사가 어떤 조사나 다른 품사의 도움없이 띄워쓰기만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읽는 독자들이 마음 속에 조사를 넣어서 읽어야 합니다. 독자들은 편집기자가 원하는 대로 조사를 넣을 수 있을까요.


편집자가 원하는 맥락.

  국내(에서) 혁신형 물기업(의) 

     1번지(라 할 수 있는 지역)는 대구(다)

부주의한 독자가 파악한 맥락.

  국내 혁신형(은) 물기업(인데) 

     1번지(가) 대구(에 있다)


이렇게 읽어버리면 무슨 뜻인지 감도 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의도대로 읽기를 원했다면, <국내 '혁신형 물기업' 1번지, 대구>라고 문장기호를 사용했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문제는 이 제목으로는, 조사를 충분히 넣었더라도 ‘자화자찬'의 느낌만 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편집기자는 기사를 이미 한번 읽었기에 그 내용을 염두에 두고 제목을 달 수 있지만, 내용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그 내용을 아직 모르기에 제목을 소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경우는, 기사의 '팩트'를 조금 더 가져오는 게 소통에 유리합니다. 


한국의 ‘혁신 물기업', 절반은 대구


이렇게 하면 2년에 걸쳐 20개 중 9개가 뽑혔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명사로 끊어지던 제목도 좀 부드럽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뉴스는 전달할 수 있지만 그게 뭐가 대단한지 독자가 설득당하기 어렵습니다.


혁신형 물기업 水都, 대구가 떴다

'대구, 혁신의 한水' 정부가 엄지척

한국 ‘물의 혁명’, 대구가 주도하다


이런 고민들이라도 들어가야 독자와의 눈맞춤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림2] 제목에 전자발찌 채우는 법






 이 지역신문은 부산 동래구의 성폭행 사건 범인이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으나 무용지물이었다는

 문제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범인이 집을 벗어나 범행을 저지르고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4시간 동안     법무부 모니터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시간 범행' 놓친 전자발찌 '채우나 마나'


 전자발찌가 소용이 없었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보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대강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헤드라인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홑따옴표(‘ ')를, 한 줄로 된 한 문장에서 두 번이나 쓰는 일은, 제목달기에선 금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채우나 마나'는 채워봐도 소용이 없었다는 의미로 썼겠지만, 채울지 말지 고민한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제목을 한 줄 더 다나 마나 고민하고 있다”할 때처럼 선택지를 가리키는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을 달고 난 뒤, ‘오해의 소지'나 ‘노이즈(뜻밖에 생기는 다른 뉘앙스)의 발생'을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의 제목을 좀 더 생생하게 표현하면 이렇게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성폭행-도주 4시간, 전자발찌는 '헛발감시'


이 기사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전자발찌 자체가 끊고 달아날 만큼 허술하다는 점과, 전자발찌가 전하는 범인 동선(動線)을 관찰하는 법무부의 시스템이 느슨하거나 정교하지 못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를 강조하여, 상황을 재연하면서 제목으로 구성해볼 수 있을 겁니다.


성폭행 중인 전자발찌, 관찰관은 못 알아챘다

관찰관 방심한 상이,

전자발찌는 성폭행 중이었다


[그림3] 입학한 그 학과, 졸업땐 없어진다?

지방대학이 만성적인 학생수 부족과 코로나19로 인한 극심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학과 통폐합 이 빚어지는 상황을 들여다본 기획기사입니다. 다니던 학과가 갑자기 사라지는 상황을 겪어야 하는 학생으로선 엄청난 피해일 수도 있지만, 대학의 생존 몸부림이기도 하기에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대학은 살았지만 학생은 버려졌다


매우 강렬한 대비로 눈길을 잡는 헤드라인입니다. 사실 ‘학생은 버려졌다'는 말이 정확한 묘사인지 따져봐야 하겠지만, 학교를 살리기 위해 학생의 ‘지속가능한 학문'의 길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대학은 살았지만 학생꿈은 사라졌다” “대학이 숨돌릴 때, 학생은 숨막힌다” 이런 동류의 제목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툭하면 ‘학과 성형수술', 대학이 기형화

학과 죽여 학교 살리기... 학생은요?

또 우리 학과가 사라졌다





[그림4] 착한 규제가 대출문을 막을 때



최근 경제신문을 중심으로 꾸준히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부작용'에 대한 기사입니다. 정부는 이 정책으로 208만명의 이자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학계에서는 300만명이 오히려 정상적 대출시장에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를 내놓고 있습니다. 선한 취지의 ‘시장 금리' 규제가, 오히려 금융 약자들을 최악으로 내모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300만명이란 숫자가 놀랍기에, 기사를 1면으로 올렸을 것입니다. 편집기자는 이런 ‘뉴스성'을 반영해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았네요.


법정최고금리 인하의 역설

최대 300만명 대출 막힐 판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이 더 활발해질 수 있어야 하는데, 고금리를 물던 사람들이 오히려 대출을 못하게 되는 게 ‘역설'입니다. 그런 규제 때문에, 300만명 정도가 대출이 막혀 불법금융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할 말은 거의 다 한 것인데, 이것이 방송이나 다른 신문에서도 많이 다룬 기사인지라 기시감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300만명이라고 말한 교수의 말만으로 새롭다고 보기엔 좀 약하죠. 이럴 경우엔 제목이라도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설형 카피를 구사해 기사 내용과 의미를 진화시키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금리 ‘착한 규제의 저주'

  300만명에 불법사채가 윙크

  금융문턱 높일 금리규제

  300만명 곧 대출대란

 




[그림5] 속담의 힘을 빌리는 법

이 신문은 나무를 베어버린 민둥산 사진을 크게 싣고, 이 정부의 탄소정책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비판 기사를 실었습니다. 산림청은 올 1월에 잘라낼 수 있는 나무의 나이를 대폭 낮춰 신규 조림지를 확보하겠다고 밝혔지요. 정부의 2050 탄소중립 계획에 들어있는 것으로,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 나무 30억 그루를 심어 30년간 3400만톤의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계획에 따라 산림벌채를 행하고 있는데, 신문은 이것이 과잉벌목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환경단체에서는 우려를 표명하는 상황이고, 당장 여름에 홍수로 산사태가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는 거죠. 

1면 편집자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활용해, 탁상공론의 어이없는 결과를 비꼬면서 이렇게 제목을 달았네요.


산으로 가는 文정부 탄소정책


정부의 이 정책은 무려 30년을 내다보고 진행하려는 것이라, 큰 방향이 맞다 해도 부작용이 있다면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생겨날 수도 있기에 우려하는 시선은 당연한 것이겠죠. 이 신문의 문제제기는 그런 우려를 현장 르포와 함께 담아서 정부의 대담한 결행(決行)에 재고(再考)를 요청하는 형식입니다. 민둥산 사진 위에 ‘산으로 가는'이란 표현을 생각해낸 편집기자는 대단한 순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기사 전체의 내용을 살펴보면, 결행의 근거만큼이나 비판의 근거도 약할 수 밖에 없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저 제목 하나만큼은 기사의 메시지와 의도를 십분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는, 빼어난 편집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주경제 편집총괄 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