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작으면 어때. 우리 집이 아니면 어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이면 충분해. 지방에서 학군이 무슨 소용이야. 공부 못해도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돼. 사지 멀쩡한데 뭘.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벌면 되지. 이 정도면 괜찮지.’

상상만 해도 자유롭고 평화로운 말들.

하지만 주식으로 몇억을 벌었네, 비트코인이 몇 배가 되었네, 작년에 산 집이 두 배로 뛰었네, 아무개 아이는 고작 여덟 살인데 원어민과 대화가 되네…. 딴 세상 이야기와 마주하고 오는 날은 멘탈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다. 지금 바로 옆에서 ‘진짜’ 일어나는 일들이다. 저게 다 가능한 걸까. 금세 초라해지는 마음. 

"소소한 삶에 만족해. 이 정도면 충분하지!” 

허나 그것도 잠시다. 유치원 하원길 아이 친구 엄마의 외제차(이런 날은 멀찍이 차를 대고 싶다), 신도심 새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동네 엄마의 소식(우리 집만 이 동네에 남네), 대학 동기들의 입 떡 벌어지는 연봉(난 여기서 뭐 하지)…. 롤러코스터 타듯 왔다갔다하는 마음가짐.

하지만 삶의 원동력은 큰 것보다 작은 행복에서 온다는 것을 안다. 

아이를 일찍 재우고 늦은 밤 갖는 나만의 시간, 최애 프로그램 EBS건축탐구집이나 SBS스페셜 시청이랄지, 쇼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인스타 속 타인의 삶을 구경하는 것, 채종한 커피나무 씨앗이 발아에 성공했을 때, 실내자전거를 열심히 구르고 난 뒤 모니터에 찍힌 숫자 200kcal, 책방 서가의 책 냄새를 맡으며 아무 생각 없이 서성이는 것, 문득 코 끝에 스치는 밤꽃 향기, 1년 전 아버지 산소에 심은 잔잔한 꽃잔디, 과일가게 사장님이 덤으로 얹어주시는 참외 한 개.

나와 다른 세계에서 만족을 찾는다면 그것은 환상의 세계가 되고 만다지. 내가 편한 옷, 내가 편한 가방, 내가 편한 차, 내가 편한 집, 내가 주인공인 삶. 

도무지 나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몇페이지 읽고 책장에 꽂아두었던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다시 읽기 시작한 요즘,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축적하지 않아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그들만의 방식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비움으로써 내삶은 채워진다.


 전북일보 이연실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