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고효율의 최신 제품을 만드네 또 저걸 만드네 하는데 이런 건 어깨에 계급장을 달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전 회장의 말이다. 

고효율만 추구하는 제조업의 발상을 버리고 

고객이 원하는 큰 틀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미디어들도 다르지 않다. 

PC와 모바일 환경에서 콘텐츠를 슥슥 위아래로 밀거나 좌우로 스와이프하며 읽는 방식은 뉴스 소비가 아닌, 소모하게 만들었다. 이는 개발자들의 공급자 중심 사고방식이 만든 결과물이며, 뉴스 본연의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면 플랫폼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고객한테도 ‘기사가 버려지는 식’의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뉴스의 가치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편집이다. 좋은 제목이 없으면 아무리 질 높은 콘텐츠라도 뉴스 고객의 눈앞에 닿기 어렵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그 쓰임새는 더 강력해지고 있다. 뉴스 고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편집 가치’를 담고 있는 주요 수상작들을 분석했다.




울림과 떨림…뉴스의 참맛을 깨우다

마스킹 2020· 폐점시계 등 코로나 수작들 눈길

감성 돋거나 묵직하거나…독자시선 멈추게 해

‘뉴스 그 이상의 가치’ 그려낸 작품들 쏟아져


올 한해에도 코로나와 관련된 훌륭한 지면들이 쏟아졌다.

2020년 마지막 날, 한국일보 김대훈 부장과 성시영 차장은 <마스킹 2020>이라는 1면 지면으로 한해를 고요하게 정리했 다. 1년 내내 사람들 얼굴부터 모든 일상을 가린 코로나 괴물 의 폭거를 마스크 한 장의 이미지로 잘 압축시킨 수작이다. 경 향신문 장용석 차장의 <코로나 잡는 골든타임 21:00 ‘폐점시 계’ 자영업 잡는 데드타임>은 코로나 시대의 슬픈 자화상 투 영시킨 ‘기사 그 이상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 지면이다. 부산 일보 김동주 차장의 <곧 결혼식이 중계 됩니다, 하객 여러분 은 접속해 주십시오>도 코로나시대 사회의 한 단면을 명쾌하 게 전달했다.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편집 또한 눈길을 끌었다.

경향신문 김용배 기자의 <아버지를 닮아…아버지를 담아… 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제목은 시인 박준이 품고 있는 아 버지에 대한 그리움, 연민과 결을 같이 한다. 어릴 적 함께 찍 은 사진부터 지금 모습까지 세 컷을 배치했고 제목마저 독자 들의 공감과 추억을 노크했다. 인천일보 김세화 기자의 <세월 의 파도도 삼키질 못했다>는 세월호 추모행사를 모은 단순한 일정 기사를 차원이 다른 밸류의 기사로 만들었다. 여운이 남 는 함축적 제목과 상징적 사진을 배치해 7년이 지나도 해결 되지 못한 세월호의 오늘을 이야기했다. 

세계일보 김창환 차장의 <쇳물보다 뜨겁게 손잡아 주오> 는 가마솥 검은 색 배경에 안성 주물공장 김성태 전수자의 거 친 손을 배치했다. 감성적인 제목과 어우러져 강한 흡입력이 만들었다. 한국경제 조영선 기자의 <村스럽게, 시골서 휴가중 >은 좋은 일러스트가 어떻게 제목과 호응하여 지면을 돋보이 게 만드는지 보여줬다. 서울경제 오수경 기자의 <花海의 시간 에 물들다>도 제목과 사진이 서로 밀고 끌면서 ‘꽃과 바다의 고장’에 독자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경인일보 장주석 차장의 <살아남은 ‘민영이들’, 끝나지 않 은 ‘기억의 학대’>는 아동학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조명 하는 기사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학대 자체는 끝났을지 몰라 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계속 고통받는 그들의 모습을 ‘기 억의 학대’라는 제목으로 ‘살아있는 민영이들’을 끌어안았다. 조선일보 신상엽 차장의 <아무도 내리지 못했다>는 광주 건 물붕괴 현장의 참상을 감성적으로 의미를 한 번 더 꼬아 더 아프게, 더 슬프게 표현했다. 


이슈를 관통한 묵직한 제목도 빠질 수 없다.

부산일보 박기범 선임기자의 <민심, 레드카드 들다>는 함 축적이며 중의적인 제목으로 보궐선거에서의 민심을 정확 히 표현하는 편집의 묘미를 발휘했다. 아시아경제 최승희 차장의 <10 명중 7 명이 가짜 농부…그 농지에선 투기가 자 랐다>는 단연 눈에 띄는 헤드라인이다. 팩트에 근거한 촌 철살인 제목이 팩트 이상의 임팩트를 줬다. 국제신문 박은 정 차장의 <눈부신 죄…고층빌딩에 드리운 ‘소송 그림자’> 는 빛과 그림자를 멋지게 대비시켰다. 흑과 백의 강력한 에 너지가 지면에서 뿜어져 나오며 제목이 그림이 되는 마술을 선사했다. 한국일보 박새롬 기자의 <내걸린 욕망, 도시가 묻 혔다>는 과감한 작품이다. 여백이 과감하고 제목 또한 과감 하게 풀어냈다. 

서울신문 홍혜정 차장·김영롱·김휘만 기자의 <그를 잃고, 남은 이들의 고통이 시작됐다>와 경향신문 김용배 기자의 < 지고도 미안했고 이겨서 미안했다>는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 과 어려운 기사를 강렬한 제목과 편집으로 쉽게 풀어내 독자 의 시선을 빼앗었다. 

아주경제 이낙규 기자의 <家乙의 비명> 추석 이후 부동산 시장 상황을 중의적 헤드라인을 사용해 서민들의 주거 고통 을 정확히 설명해줬다. 한국일보 성시영 차장의 <또 줄 선 대 한민국>은 군더더기 없는 한 줄의 제목과 그 의미를 극대화 시키는 한 장의 사진으로 ‘제목+사진’은 ‘1+1=2’가 아님을 증 명했다. 이데일리 고은정 차장의 <이력서 백통 넣고도 못 뚫 은 벽, 그 집 아빠 전화 한통에 뚫렸다>는 아빠찬스에 분노하 는 청년들의 심리를 제목의 대비와 대구를 통해 강렬하게 전 달했다.


재치와 운치…뉴스의 말맛을 돋우다

키움의 힘, 키움의 흠·두 별, 이별?‘류’페이스 등 

운율· 대구에 중의적 표현…뛰어난 ‘기술’들 뽐내

보다 날카롭게 메시지 전달 ‘기획의 힘’도 돋보여


기사는 산문이고 제목은 운문이다. 

긴 기사를 군살 다 빼고 두서너 단어로 뽑아낸 알맹이는 뇌 리에 강하게 꽂힌다. 축약으로 남겨진 여백은 호기심과 여운 이 채운다. 이에 이끌린 독자는 글을 과식한다. 짧은 제목이 가진 힘이다. 

올해도 운율과 대구, 중의적 표현 등 뛰어난 솜씨가 넘쳐났 다.  문화일보 김동현 기자의 <전세계 파워우먼, “우먼파워” 외치다>는 앞뒤 단어를 뒤집어 살짝 비트는 기술로 제목에 강한 파워를 불어넣었다. 한국일보 박새롬 기자의 <우리가 바란 바다와 우리가 버린 바다>는 바란과 버린의 표현 외에 도 전체 지면을 오염된 바다를 상징하듯 검은 바탕으로 처리 해 인상적이었다. 

서울신문 유영재 기자의 <키움의 힘, 키움의 흠>은 힘과 흠 의 대구가 절묘했다. 전자신문 조원 기자의 <백화점 ‘파격’ 마 트 ‘반격’ 홈쇼핑 ‘진격’>은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는 기사를 깔끔하게 정리했으며 유통 분야별로 ‘격’이라는 운율이 있는 제목과 실적 그래픽으로 깔끔하게 나누고 적절하게 묶었다. 서울경제 김은강 기자의 <숨김없는 싼티·날티…소리없이 불 티 난다>는 터치가 가볍고 ‘티·티·티’라는 운율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서울신문 김영롱 기자의 <두 별, 이별?>은 제목의 영롱한 재치가 돋보였다. 서울신문 신혜원기자의 <존재감 부 재중, 추억은 통화중>은 운율을 살린 제목과 그래픽 요소, 화 려한 레이아웃이 시너지를 내면서 사라져가는 공중전화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줬다. 서울신문 문종일 기자의 <나이가 대수냐, 훤한 신수> 또한 헤드라인의 운율적 표현으로 추신 수 선수의 국내 활약상을 소개하고 있는 탁월한 편집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이데일리의 한초롱 기자의 ‘이 호박… 점 점 빠 져든다’는 제목이 단순한데도 ‘점 점’의 중의적 의미가 그림과 어우러져 곱씹게 했다. 매일신문 남한서 차장의 ‘MOON 앞 다가서다’도 영어를 중의적으로 차용해 잘 풀어냈다. 기호일보 양희도 기자의 <수염 깎고 되찾은 ‘류’페이스>는 

8월 한 달 6경기 내내 부진했던 류현진이 덥수룩한 수염을 깎 더니 부활했다는 기사를 중의적 표현으로 센스있게 압축했 다. 한국경제 방준식 기자의 <편하진 않지만 펀(fun)해, 그게 올드카>는 지면의 배경 색감, 별 모양 배치, 색동 스타일 선 처 리까지 MZ세대의 뉴트로 감성을 그대로 옮겨와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경향신문 임지영 차장의 <사람이 있다, 삶이 있다, 그럼 집일까>는 딱딱하기 쉬운 고발성 기사를 부드러운 감성 으로 터치했다. 문화일보 김희훈 차장의 <아이유 ‘듣고’ 로제 ‘보고’ 임영웅 ‘산다’>는 가요분야 현상을 위트있게 담았다. 스 포츠서울의 전수지 기자의 <V리그 강타한 학폭탄>과 한국경 제 윤현주 기자의 <날 닮은 너, 묘하게 끌리네>는 길지 않은 제목으로 제목이 가진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학폭탄’과 ‘묘하게’는 각각 두가지 느낌을 동시에 심플하게 전해줬다. 조 선일보 박준모 기자의 <개미들 ‘사주팔자’ 봐드립니다>는 컬 러풀한 일러스트와 제목이 어우러져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 다. 매일신문 남한서 차장의 <술자리 달리다가 프로야구 멈 췄다>와 서울경제 김은강 기자의 <여홍철로 날아올라…양학 선에 착지하다>는 날렵한 제목으로 기사의 핵심을 짚고 그것 을 이미지로 형상화 하게 만드는 센스를 발휘했다. 


기획력이 돋보인 지면들도 독자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국경제 이명림 차장의 <올해 꼭 사야할 주식, 잘 보이나 요?>는 편집의 힘을 보여준 작품이다. 흔하디흔한 ‘내년 주식 투자 가이드’ 기사를 사람들이 집중해서 보는 시력검사표처 럼 기사에 대한 집중력을 단숨에 높였다. 한국경제 윤현주 기 자의 ‘대출은 고정하소서’는 옛말투과 삽화, 인포그래픽을 버 무려 금리인상기의 자산관리법을 재치 있게 전달했다. 경인 일보 박준영, 성옥희 차장, 장주석, 연주훈 기자의 <‘내 일’없 는 청춘> 기획은 3 개면에 걸쳐 고용 실종시대를 집중 분석했 다. 다양한 기사를 하나의 주제 아래 유기적으로 일목요연하 게 엮은 심층기사의 모범적인 예다. 경향신문 구예리 기자의 <보이나요, 누군가에겐 절망인 28cm>는 언어감각을 자극시 켜 사회 현상의 의미를 쉽게 이해시키고 관련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경향신문 임지영 차장의 <당신의 회사는 어디에 있습니까>는 상장회사 여성임원 비율을 명단 으로 구성해 지면을 채웠다. 단조로운 명사 나열식 지면에서 벗어나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기획력이 돋보였다.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진다는 뜻이다. 장님은 코끼리 코 를 만지고도 다리라고 말하고, 넓은 옆구리를 만지고는 벽인 줄 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가지 고 고집한다는 의미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판에 박힌 제목으 로 그저 기사만 쓸어넣는, 찍어내듯 편집하면 언제나 독자들 에게 코끼리 다리만 만지게 하는 셈이다. 뉴스의 행간을 읽는 눈과 기발한 표현, 신선한 레이아웃으로 독자들에게 코끼리 전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새해에도 모두가 자만하지 않고 편집의 힘을 믿는 우리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