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파밀리아 성당, 톨레도… 꿈에도 그리던 감동이


국민일보 서정학 차장 

한국편집상이라는 큰 상을 탄 게 아직도 얼떨떨하다. 더구나 해외시찰지가 평소 그리던 스페인이다. 두 번의 행운을 한꺼번에 받으니 그야말로 꿈만 같다. 평소 해외여행은 못가도 TV 여행프로그램 만큼은 열심히 보며 가슴에 두었던 곳. 가우디의 건축을 경이롭게 여기며 언젠가 가보겠다던 희망이 실현되다니…. 화면 속 빠에야를 보며 군침 흘리던 기억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부푼 희망을 안고 출발 전까지 스페인을 열공하리라 다짐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여행책자를 책상 가장 좋은 자리에 모셔 두었다. 연속되는 야근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첫 장을 넘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비행기에 오른 뒤에야 첫 장을 열었다. 스페인으로 가고 있다는 실감나지 않는 현실에 사진과 글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잠을 뒤척이듯 비몽사몽간에 장시간의 비행은 어느덧 끝나고 바르셀로나의 풍경이 다가왔다.

“스페인엔 소매치기가 많아요” “가방은 반드시 앞으로 매시고 캐리어는 항상 손 안에 두세요” “여권 잃어버리면 골치 아픕니다”

현지 가이드에게 귀가 아프게 들은 주의사항이다. 걱정이 밀려왔지만 가우디의 스페인을 만 난다는 설레임은 커져 갔다.

첫 날 버스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외벽에 조각된 예수님과 주변 인물들의 스토리가 성경을 풀어 놓은 듯 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따스한 빛과 나무 모양의 기둥들이 숲속을 거닐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이어 인도와 차도를 합쳐 폭이 100m는 돼 보이는 바르셀로나 도심에 도착했다. 그리고 화보 속에서 수없이 봤던 낯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모퉁이에 손으로 그린 것 같은 곡선의 주택 ‘카사밀라’. 멋지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이어 붙였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가의 작품은 이색적인 것을 훨씬 넘어 ‘아름다운 파격’이었다.

가우디 건축의 감격은 오리엔테이션에 불과했다.

넷째날 마드리드가 수도로 정해지기 전 오랫동안 수도였던 고도(古都) 톨레도에서 큰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좁고 아기자기한 오르막 골목길을 지나 산토 토메 교회에 들어섰다. 입구 한쪽 벽에 그려진 3대 성화(聖畵) 중 하나인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엘 그레코의 대표작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 전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책으로 봤던 명화들이 박제된 느낌이었다면 실제로 대면한 작품은 확실히 뭔가 달랐다. 가이드의 해박한 설명이 더해지니 희미한 감동이 더욱 진해졌다. 살아서 많은 선행을 했다는 오르가즈 백작이 땅에 닿을 듯 두 성인의 품에 안겨 있다. 이 작품이 그려진 벽 앞 바로 아래 실제로 백작이 안치돼 있다. 작품 안팎으로 스토리텔링이 이어지게 만든 배치가 절묘하다.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가우디의 건축을 흠모한 시간만큼 감동이 전해졌다. 예상치 못한 명화와의 만남도 그랬다.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여는 순간 가까워지는 신비한 체험이었다.

무엇보다 낯선 선후배들과의 만남이 갈수록 진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유쾌한 동지들과의 즐거운 여행. 되돌아온 일상에서 새롭게 출발할 새 힘이 솟는다. 이젠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갈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