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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경기 직관… 레알 럭키!


조선일보 박준모 기자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한 12월 8일 금요일은 공교롭게도 레알 마드리드와 도르트문트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예선이 열리는 날이었다. 처음엔 볼 생각도 안했다. 예약도 안했고 티켓도 매진됐을 게 뻔하니까. 자유 시간에 레알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둘러보고 레알 공식 매장에서 호날두 유니폼, 레알 목도리, 장갑을 구매했기에 큰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이건 뭔가 아니다’ 싶었다. 내가 마드리드에 온 날, 축구팬인 나를 기다렸다는 듯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가 잡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지레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러고도 내가 축구팬인가?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상부(?)에 보고한 뒤 콜택시를 불러 경기장으로 갔다. 택시비만 5만원이 나왔다. 경기는 이미 시작했기에-나중에야 알았지만, 시작 전이었다- 입장해도 시합을 오래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갔다. 함성 소리라도 듣기 위해서였다. ‘뻗치기’를 하면 경기 끝나고 나오는 호날두 머리카락이라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사람이 너무 많은데다 워낙 출입구가 많아 어디로 갈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달렸다. 그리고 들이댔다. 착하게 생긴 경찰이나 직원을 붙잡고 티켓 구하고 싶다고 했더니 “임파서블”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여기로 가라고 하고, 저 사람은 저기로 가라고 했다. 가라는 데로 달렸다. 마침내 매표소 앞에 섰을 때 직원이 내게 말했다. “티켓 1장 있네요. 경기 시작하지 않았냐고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참인데요?”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땡큐!! 땡큐 베리머치!!!”

티켓을 손에 쥔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 영혼은 전율했다. 온몸은 핏줄까지 부르르 떨렸다. 티켓 인증샷을 찍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려 사진이 계속 흔들렸다. 티켓을 노린 누군가가 날 덮칠까봐 사주 경계를 철저히 했다. 하지만 이번엔 게이트 위치를 몰랐다. 경찰이 가리키는 곳으로 또 달리고 달렸다. 입장한 뒤에도 자리가 헷갈려 현지 직원을 붙들고 제발 자리에 데려달라고 애걸했다. 난리법석 끝에 나의 목적지인 ‘405-E 구역 439섹터의 3번째 줄 3번째 자리’를 찾았다. 챔피언스리그 주제가가 울려퍼지는 산티아고 베르나우를 마주했을 때 등골에 다시 한번 소름이 쫙 돋았다. 내 눈앞에서 호날두가 골을 넣었고, 지단이 대머리를 드러낸 채 선수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90분간 나는 레알팬으로 완벽히 빙의했다. 레알 마드리드 패션으로 중무장한 내게 마드리드 사람들은 얼마나 호의적이었던가. 꿈같은 90분이 지난 뒤 경기장 인근의 교통지옥에서 간신히 택시를 잡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밑도 끝도 없이 택시 기사에게 말을 건넸다. “저 레알 마드리드 경기 봤어요. 대단하죠?” 기사가 씨익 웃는다. “유 알 쏘 럭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고 있었다. 모든 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럭키! 함성 소리라도 들으려고 갔는데 축구를 보고야 말았다. 어쩌면 그날 나는 세계 최고의 행운아였을지도 모른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나라, 축구를 일상으로 여기는 나라, 어머니와 아들이,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축구를 보는 나라. 이 멋진 나라 스페인을 이제 떠난다.

나도 웃으며 답했다.

“예스, 아이 엠 쏘 럭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