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애완견이 죽으면 주인이 휴가 쓰는 나라


중앙일보 이진수 차장

#나이든 분에게 이런 표현을 쓰긴 죄송스럽지만...가이드는 푼수였다. 혼자 말하고 혼자 깔깔댔다. 쉴 틈 없이 입에서 나오는 얘기엔 힘이 있었다. 삶을 사랑하기에 가능한 그런 목소리였다. 대학 졸업 후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 가려다 우연히 들렀다고 한다. 그녀의 스페인 삶은 그렇게 30년 가까이 흘렀다. "여기가 젊을 때 밤새 클럽에서 놀다가 아침에 배고프면 먹던 곳이예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말한다. 가우디가 설계해 아직도 공사중인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에선 아무도 몰랐던 조각과 숫자에 담긴 비밀을 술술 얘기한다. 하몬(한국에선 과거 '하몽하몽' 영화 때문에 하몽으로 잘못 오역됨)과 와인의 궁합을 말할 땐 본인의 추억을 풀어놓는다. 그녀가 스페인이고 스페인이 그녀인 것처럼...


#처음 이틀을 묵은 바로셀로나 외곽. 우리로 치면 일산-분당 같은 신도시 주택가였다. "여기선 집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요"...이유를 묻자 "그럼 다른 사람도 꾸미고 싶잖아요. 서울은 어딜 가든 욕망을 부추기지만 여긴 안 그래요"..."값도 비싼 편은 아니예요 평당 700만원 정도?"...초등학생도 "너희 집 몇평이냐"고 묻는 한국 풍경이 떠올랐다.


#마지막 날, 산미겔 시장에서 3시간 넘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폭풍 쇼핑의 시간. 가이드와 함께 늦은 점심을 했다. 주문한 음식이 40분 넘게 나오지 않자 "오늘은 좀 늦네" 이게 그녀의 유일한 짜증이었다. "여기선 손님이 왕이예요. 그럼 왕도 왕답게 굴어야지" 우린 1시간을 깔깔 대며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먹었다.
#낮잠의 나라, 애완견이 죽으면 주인이 휴가를 쓰는 나라, 어딜 가든 올리브 나무가 있는 나라, 석유 빼곤 다 생산되는 나라...우리처럼 죽기살기식으로 안 살아도 그들의 삶은 여유로웠다. "오늘 친구 생일인데 못 가겠네"라며 웃다가 "오늘 못 만나면 다음에 보면 돼요"라는 그녀의 말에 스페인을 보았다.